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키아 왕국 (문단 편집) ==== [[다키아 전쟁]]: [[트라야누스]] 황제 ==== 결국 [[트라야누스]]는 다키아의 완전 정복을 위한 전쟁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하여, 101년, 트라야누스는 아예 다키아를 멸망시킬 목적의 대규모 원정을 실시했다. 이 원정은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많은 병력이 투입된 '''속주 단위 대규모 전쟁'''으로서, 갈리아 원정을 떠났던 [[카이사르]]도 한 수 접어줄 수준의, 로마 제국 2,000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규모의 전쟁이었다. 로마가 동원한 총병력은 '''15만~20만'''. 정규 로마 군단병뿐만 아니라, 각 [[속주]]나 동맹국에서 여러 병력을 제공했다. 여기에 맞선 다키아군은 총 4만 명 정도였으니 로마 입장에서는 적 군대의 4-5배 규모의 병력을 동원한 대원정이었다. [[파일:Trajan_Dacian.png|width=750]] 로마군을 자주 골탕먹였던 다키아 왕국은 이런 대규모 원정은 버틸 여력이 없었고, 101-102년의 원정에서 수도를 빼았겼으나 데케발루스는 산악지역으로 도피하여 계속해서 게릴라전을 펼쳤다. 이 게릴라전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자 트라야누스는 아예 저항을 뿌리뽑으려고 105-106년 다시 원정을 단행했고, 데케발루스는 로마의 대병력에 대패하여 쫓기다가 포로가 되길 거부하고 자결했다. 이렇게 다키아가 패하기는 했지만 이제 겨우 새로 생겨난 나라가 당시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절대 강국 로마의 대규모 침공을 5년간 견뎌낸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애초에 트라야누스는 다키아 원정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다키아의 완전 정복을 이룰 수 있도록 철저하고 신중하게 원정을 단행했으며 행군 도중 기회 닿을 때마다 요새를 단단히 하나씩 세워가며 진출했다. 다키아를 초토화시킨 것은 덤이었다. 다키아의 분전에 비할 수 있는 것은 훗날 [[불가리아 제1제국]]이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바실리오스 2세]]의 로마를 상대로 30년을 버틴 것인데 전성기라곤 해도 이 당시 로마는 지중해 전체에서 지중해 동부로 반토막, 여기서 발칸 및 아나톨리아로 또다시 반토막이 난 것이기 때문에 다키아 원정 때의 전력을 가진 로마군의 침공을 받았다면 다키아처럼 5년을 버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에는 로마의 적수였던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조차 로마의 총력전 침공을 두려워해서 함부로 맞설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라야누스는 다키아 정복 후 파르티아를 침공해서 초토화를 시키고 멸망 위기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침공 도중에 트라야누스가 사망하는 바람에 정복을 완료하지는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